▲ 전대열 대기자/전북대 초빙교수 ©데일리코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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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일본의 압제 하에 신음하고 있을 때 수많은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 독립운동을 했다. 어두운 방안에서 몰래 태극기를 그리느라고 삐뚤빼뚤한 사괘를 그려넣느라고 고생깨나 했겠지만 그 태극기를 들고 길거리에 나서 무서운 줄 모르고 ‘대한독립 만세’를 불렀다. 대부분 총독부 헌병과 순사들에게 붙들려서 호된 경을 치렀다. 고문으로 죽은 사람도 부지기수였고 부상당한 사람은 이루 헤아리기도 어려웠다. 역사상 우리는 일제 하 독립운동의 민중봉기를 3.1만세운동과 6.10만세운동 그리고 광주학생운동으로 대별하지만 이에 가담했던 많은 애국지사들이 엄청난 고통을 치러야 했던 사실은 독립운동사에 면면히 빛난다. 비록 지도적 위치에 있지 않았던 무명의 인사들과 학생들의 영웅적인 독립운동은 우리가 잊을 수 없는 영원한 민족의 자랑이다. 그들에겐 형기를 마치고 나온 다음에도 일제경찰의 계속적인 감시로 인하여 일상생활에 지대한 장해요인이 되었다. 지금도 남아있는 ‘요시찰인’ 명부에 따르면 시시콜콜 모든 행동과 언행을 기록해놨다. 가장 무서운 것이 누구와 만나느냐는 것이었다. 접촉자가 있다는 것은 새로운 독립운동의 모의과정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제경찰은 조선백성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기록하고 감시했으며 조그마한 기미(氣味)만 있어도 예비검속이라는 이름으로 일단 붙잡아갔다. 꼼짝달싹도 하지 못하게 압박했던 것이며 이에 저항하면 즉각 구속하여 고문과 징역으로 유폐시켰다. 이러한 작폐는 광복 후 독립을 이룬 대한민국 경찰에서도 그대로 답습했다. 일제경찰을 본떴던 한국경찰 제도는 일선 경찰서에 ‘사찰과’를 설치했다. 노골적으로 모든 국민의 행동거조를 사찰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과 다름없다. 사찰과에서는 독립 운동자를 색출하던 일제경찰과 똑같은 방법으로 이승만 독재정권을 비판하는 언론이나 단체 또는 개인을 예리한 눈초리로 감시하고 핍박했다. 내가 대학 3학년 때 4.19혁명이 일어났다. 나는 전북대 정치학과 3학년학생들을 모아 4월4일 시위에 들어갔다. 경찰이 교문을 틀어막아 700여명의 학생들은 교내시위로 부정선거를 규탄했다. 그리고 주동자들은 전주경찰서에 연행되었는데 바로 사찰과로 데려갔다. 온갖 험한 소리로 기를 죽이던 형사들이 나를 다른 방으로 끌고 갔다. 거기에 목재로 된 엄청나게 커다란 통이 있었다.
그들이 뚜껑을 열자 그 속에는 온갖 고문도구들로 가득 차 있었다. 노골적으로 “너도 한 번 당해볼래?”하면서 위협했다. 그 때는 고문을 당하진 않았지만 모골이 송연한 경험이었다. 그 뒤 군사독재와 투쟁하며 중앙정보부에서 실제로 당했던 고문을 생각하면 사찰과에서 처음 목격했던 고문도구들이 지금도 눈에 아른거린다. 사찰(査察)이란 조사하고 살핀다는 뜻이겠지만 경찰에서도 그 이름이 주는 어감 때문인지 진즉 없어졌다. 정보과로 바꿨는데 지금도 그대로 쓰는지 잘 모르겠다. 그 뒤 오랜만에 사찰이란 말이 튀어 나왔는데 일명 보안사 사찰명단 사건이다. 군 보안업무를 담당하는 보안사에서 난데없이 민간인을 사찰한 명단이 폭로된 사건이다. 보안사에 근무하는 요원이 양심선언을 하는 통에 들통 난 것인데 내 이름도 거기에 있었다. 아무 죄도 없는 민간인을 군에서 조사할 필요도 없는데 이를 작성한 것은 정보부와 보안사가 경쟁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이 사건은 사찰 대상자들의 반발과 소송으로 번졌다. 아무리 정보기관이라 할지라도 당사자 몰래 그 사람의 신상을 파악한다는 것은 매우 불쾌한 일일뿐더러 인권침해의 소지가 커서 일파만파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이번에 공수처에서 윤석열부부를 비롯하여 야당 국회의원 80여명, 취재기자 등을 무더기로 통신 조회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심지어 일본 아사히신문과 도쿄신문 기자까지 이에 들어가 국제적인 물의의 대상까지 되었다. 공수처에서는 단순한 통신조회일 뿐 사찰이 아니라고 잡아떼지만 당사자가 누구와 통신을 주고받았는지 알아보는 자체가 사찰이다. 국가수사기관이 혐의가 있거나 문제의 소지가 있으면 범죄 예방 차원에서 사실관계를 알아볼 수는 있다. 이는 정당한 절차를 밟아 합법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요식행위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통신조회를 한 것은 당사자를 발가벗긴 것이나 다름없다. 무소불위의 신 권력으로 등장한 공수처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옥상옥’으로 지칭되었는데 수사과정에서도 오류를 범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대선을 앞두고 여야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처지에 야당후보의 통신을 조회한 것은 선거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기에 매우 부적절하다. 오얏나무 밑에서 갓끈을 매는 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음을 경계하는 것이 옛 어른들의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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